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국 본토 항공전 (문단 편집) == 전초전 == 사실 히틀러가 영국 공격을 금지하였지만 영국 본토 공격을 금지한 것일 뿐, 영국군을 공격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도버 해협]]에 [[영국 공군]]이나 선박이 보이면 모조리 [[개발살]]내라는 명령까지 내린 상황이었다. 이에 됭케르크에서 연합군이 철수하고 영국 본토 항공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영불해협 상공에서는 거의 매일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템즈강 하구는 '지옥불 모퉁이'라고 불리게 된다. 당시 독일은 [[도버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었는데, 영국은 여기에 맞불을 놓듯 굳이 육로로 수송해도 상관없는 물자들까지도 반드시 도버해협을 경유하여 바다로 수송하도록 지시를 내린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영국의 수송선단을 공격하기 위하여 [[Ju 87|슈투카]]와 이를 호위하기 위한 전투기들이 출동하였고, 이러한 독일공군의 출격을 레이더 또는 수송선단의 무전으로 파악하면 "뭐? 독일 공군이 쳐들어왔다고?!"라면서 [[호커 허리케인]]과 [[슈퍼마린 스핏파이어]]가 출동하는 형태였다. 1940년 7월 10일, 독일 공군은 우리가 제대로 공격하면 영국 공군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간보기 위하여 평소 10기 전후에 불과하던 공격부대를 확 늘려서 70기나 파견하였다. 이를 확인한 영국 공군은 그 즉시 54기의 전투기를 날려 보내 응수하였다. 도버 상공에서 맞붙은 양국 전투기들은 격렬한 공중전을 펼쳤으며, 영국이 3기의 허리케인과 1척의 수송선을 상실하였고, 독일은 4기의 Bf109E를 손실하는 결과를 보였다. 다음날 독일은 30기를 동원하여 영국의 수송선단을 공격하였고, 영국도 9기의 전투기를 동원하여 응수하였다. 이 전투에서 스핏파이어 2기를 상실하였지만, 그 사이 허리케인이 슈투카들을 성공적으로 요격하면서 선단공격은 좌절되었다. 같은 날 오후에는 독일이 55기를 동원하여 재차 공격하였고, 영국이 잘못 대처하는 바람에 고작 6기의 허리케인으로 요격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독일의 공격부대에는 Bf109가 없었고 그 덕분에 허리케인은 2기의 슈투카를 격추시킨 후에 유유히 귀환하였다. 이후 8월 11일까지 위와 같은 유형의 전투가 반복되었는데 이 기간동안 영국은 45대의 스핏파이어와 64대의 허리케인을 포함하여 115대의 전투기를 손실했고 독일은 53대의 bf 109를 포함하여 80대의 전투기, 22대의 급강하 폭격기, 100대의 중형 폭격기를 손실했다. 손실 항공기 자체는 독일이 많았지만 본토 방공에 필요한 전투기의 손실은 영국측이 많았기에 독일로서는 상당히 재미를 본 상황이었고 본격적인 결투를 앞두고 이런식으로 영국공군의 전력을 깎아내면 결과적으로 득이 되기 때문에 조종사들의 출격을 형식적으로 제지를 했어도 크게 간섭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국공군은 이런 식의 전투를 달갑지 않게 생각했으며, [[휴 다우딩]] [[대장(계급)|대장]]과 11 전투비행단 단장 [[키스 파크]] 소장은 가급적이면 전투기를 보존하려 하였다. 이로 인해 손실되는 영국 전투기와 조종사의 수가 점점 늘어나자 파크 소장은 혼자서 해협상공을 비행하고, 적기를 추적하는 것을 금지하는 엄명을 내렸다. 또한 다우딩 대장은 아예 선단 호위 못해준다며 배째라 식으로 나갔다. 당연히 해군의 원성과 내각(특히 처칠)의 압박이 있었으나 다우딩 대장은 전에도 그랬듯이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렇게 영국 공군이 해협에서 물러나면서 해협 전투는 독일의 판정승으로 끝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